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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



[NEWSinPhoto 순교자의 소리]북한의 문을 여는 길, 독일 아닌 폴란드가 가장 실제적 모델인 이유?…… 폴란드, 순교자의 소리 대표 마첵 윌코스(Maciej Wilkosz) 목사 기자회견.

제가 방한을 한 것은 여러분들에게 희망을 드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하나님은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강림절 전야에 외칩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외칩니다.

성령이여 오소서. 성령이여 오소서. 이 땅을 바로 이 땅을 새롭게 하소서

북한의 문을 여는 길,

독일 아닌 폴란드가 가장 실제적 모델인 이유?

폴란드, 순교자의 소리 대표 마첵 윌코스(Maciej Wilkosz) 목사 기자회견.
{NEWSinPhoto.com 뉴스인포토  주동식@사진전문기자  20180315 한국 순교자의 소리. 마포}







역사, 문화 및 기독교 주도의 탈공산화 운동 전반에 걸친 북한과 폴란드 간의 유사성 연구를 논하기 위해 폴란드 순교자의 소리 대표 마첵 윌코스(Maciej Wilkosz) 목사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북한이 공산주의를 벗어나는 방안으로 ‘폴란드식 기독교 전략’을 주장합니다.  아울러 북한이 폴란드가 경험한 바를 기초로 국가 차원에서 진정한 변화를 겪을 수 있도록, 폴란드 정부와 교회 및 의료단체가 순교자의 소리를 통해 어떻게 탈북민 기독교인들과 함께 일할 것인지를 논하기 위해서이다.. 



한국 통일의 모델로 자주 언급되는 나라는 독일입니다. 하지만 폴란드 순교자의 소리 대표이자 폴란드의 저명한 북한 분석가 마첵 윌코스 목사에 따르면, 북한이 공산주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따라가야 할 가장 적합한 모델은 폴란드라고 권고한다.



 윌코스 목사는 폴란드 공산 정권 아래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폴란드와 동독에서 소련군이 평화롭게 철수하는 장면을 TV로 보면서 아주 행복해했던 날을 기억합니다. 이러한 경험이 그가 공산주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역할을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치도록 이끌었습니다. 윌코스 목사는 이 주제로 베트남 공산주의 치하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적도 있지만,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북한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폴란드와 북한이 굉장히 유사한 상황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요. 이는 비단 최근까지 공산주의였다는 역사적인 면에서만 아니라 문화나 종교 전반에 걸친 유사성입니다.  특히 폴란드는 북한 주민의 자유를 앞당기는 데 효과적 적용이 가능한 중요한 교훈이자 통찰력을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제시하고자 합니다.”



또한, 윌코스 목사는 폴란드의 기독교인 공무원 및 의료인과 교회의 연합회 대표직을 맡고 있습니다.  이들은 북한이 폴란드가 경험한 바를 기초로 국가 차원에서 진정한 변화를 겪을 수 있도록 한국 순교자의 소리를 통해 탈북민 기독교인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3월 15일 목요일 오전 10시 30분, 한국 순교자의 소리에서 윌코스 목사의 기자 회견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윌코스 목사의 소개와 더불어 그의 연구, 폴란드 기독교 연합에 관한 논의가 진행돠었습니다. 폴란드 기독교 연합은 북한이 공산주의에서 벗어나는 데 있어 폴란드식 기독교를 모델로 삼아 한국 순교자인 탈북민 기독교인들과 함께 동역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 기자회견문 전문 }
한국 순교자의 소리  폴리 현숙 공동대표의 통역으로 진행된 
폴란드 마첵 윌코스 목사 초청 기자회견 일부 내용이다.
........................................



한국의 경우에는 일본의 식민지 가운데 한국이 독립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 두 나라의 유사성은 19세기에 20세기에 굉장히 피크를 이루었지요.
폴란드는 왼쪽에 있고 한국은 오른쪽입니다 사람들이 아주 고난을 당하는 시대였죠
제가 볼땐 저희 나라 폴란드만큼 고난을 당한 나라는 없는 것 같아요.
세계1차대전 동안에 90%의 폴란드 지역에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그래서 80만명의 폴란드 사람들이 사망했습니다.
그 후에 2년 동안 구소련과 전쟁을 했습니다.



폴란드가 이겼지만 60만명의 폴란드 사람들이 사망했습니다.
한국의 경우에 보면 일제 식민지 통치하에 ,
그때가 세계 2차 대전인데요 27만에서 81만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세계2차대전이 1939년에서 1945년에 일어났는데 600만명의 폴란드 시민이 사망했습니다.
5명 중에 1명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후에 곧 바로 한국 전쟁이 일어나서 아주 어려운 시간이 왔습니다.
그래서 200만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 되었습니다.






세계 2차대전에 공산주의가 폴란드에 소개되었다.
8년 동안을 시민전쟁을 했다. 공산주의가 싫어서 피나는 투쟁을 한 것이죠
3만 2천명 정도가 전투, 사형, 투옥당하는 일을 당했는데,
그 때 당시 한국을 보면 북한에서도 극심한 탄압이 있었다.
200만명 이상이 사망했었다.
강제수형소, 사형, 기근으로 그렇게 되었다.
1989년도까지 폴란드에는 공산당 통치가 진행되었고
한국에서는 북한 공산 정권의 위협이 오늘날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20세기에 보면 폴란드와 한국의 유사성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후에 영상을 볼텐데 폴란드와 서울을 보여줄 수 있는데요
세계 2차대전의 바르샤바의 모습이 왼쪽에 있구요
오른쪽은 한국 전쟁 후의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꿔서 보아도 비슷하죠
희망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두 나라가 정말 그 잿더미에서부터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유사성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 한국에서는 북한이 큰 문제인데요
북한의 문제에 대해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제가 왔습니다.
제 눈으로 보고 증인이 된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1989년에 폴란드에서 공산주의가 무너질 때 저는 21살이었어요.
이 지도를 볼게요
여기 폴란드가 있고요
공산주의 국가였어요.
세계 2차대전 후거든요. 굉장히
1980년도 후입니다.


저희가 소련과 함께 국경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때당시 소련에서 400만명의 군대를 데리고 왔어요.
수천개의 핵 무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어떤 곳은 폴란드에 핵 무기를 두었고요
미사일이 폴란드에 장치되었는데 미국으로 날아갈 수 있는 그런 형태였어요



미국에서는 미사일을 폴란드나 소련에 보낼 수 있는 상태였고요.
폴란드 자체에서는 각 5만명 이상의 군인들이 있었어요
1979년도에 아프가니스탄의 침공이 있었어요
그 권력의 최정상에 올랐을 때였습니다.
폴란드 대부분의 나라들이 소련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30만명 이상의 군대가 들어가 있었어요


체코슬로바키에서는 8만명 이상이 들어가 있었다.
당시 폴란드 사람들은 공산주의에 대항했다.
무기없이 평화적으로 공산주의에 대항했다.
그렇지만 소련을 아주 두려워했습니다.
1981년도에 폴란드 내에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수천명이 감옥에 보내졌어요
그때에 수십명이 죽임을 당했어요
그 거리에 탱크가 엄청 많았어요
통행금지령이 내렸고 모든 일이 통제 되었어요



1980년도에는 극심한 경제위기
모든 것이 부족했지요. 음식이나 모든 것이 배급되고 할당되었는데
심지어 화장지도 구하지 못했어요
제가 제 아버지와 함께 신문을 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신문을 구해서 가는 특별한 장소가 있었는데요.
그 특별한 장소에 모든 종이를 주어서 가면 신문지를 화장지로 바꿀 수 있었어요.
제가 집에 올 때 아버지와 함께 화장지를 20롤-30롤 가지고 올 때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모릅니다.



고기와 생선을 얻기 위해서 몇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었어요
그런데 어떤 때는 줄이 끝난 다음에 가면 배급이 끝난거에요
그리고 제가 기억하는 것은 큰 슈퍼마켓에  있는데
살것이 아무것도 없는 거에요
살 수 있는 것은 초가 든 병밖에 없었어요
여러분들이 초, 병을 먹을 수는 없잖아요.



전력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80년도에 공부하기 위해서 가스로 된 램프로 공부를 했어요
가스 넣는 램프를 가지고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완전히 희망이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것이 33년, 34년 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1989년에 갑자기 한번에 그냥 평화가 왔어요
아무도 싸우지 않았는데 평화가 온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공산주의와 평화적으로 싸워서 이긴거에요
소련군인들에 의해  어떠한 일도 일어난 것이 아니에요
소련 군인이 폴란드에 있었는데요
폴란드에서 공산주의가 갑자기 무너지고
동유롭도 무너졌어요


1991년에 소련이 무너졌는데,

그 주위에 로마니아, 체코슬로바키, 헝가리, 동독이 다 무너진거에요.








루마니아는 피를 많이 흘렸습니다.
폴란드는 피를 흘리지 않고 공산주의가 무너졌어요
1991년도에 TV를 봤던 기억이 있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주 놀라운 것이었어요.


40만명의 소련 군인들이 폴란드와 동독에서 물러나고 있는거에요
그런데 아주 평화적으로 소련으로 돌아간거에요


일천년 동안에 처음 있는 일이에요.


폴란드는 러시아와 안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련이 우리 폴란드를 장악하거나 식민지화하거나 했던 사실이 있었어요
싸우지도 않았는데 그냥 물러난 거에요
아주 평화적으로 물러난 일이 일어난겁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습니다..
폴란드에서 공산주의가 몰락한 것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전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먼저는 여러 군대에 핵심 지도자가 제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왕을 폐하시고 왕을 세우신다고 하시죠
바티칸에 폴란드 출신의 교왕이 세워졌어요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세워졌구요
영국에는 대처 수상이
소련에는 고르파초프 공산단 서기장이 세워졌고요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70-80년도에 폴란드가 얼마나 희망이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인지 알고 계시죠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폴란드를 위해 기도했지요
1979년도에 아주 중요한 이벤트 행사가 있었는데요
그때 당시에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였습니다.
그 같은 연도에 교황으로 선출된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를 방문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요 폴란드에 이 분이 오는 것을 반대했지만 중지시킬 수는 없었다.
이때 당시에 수백 만 명의 폴란드 시민들이,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교황 바오로 연설을 들었는데요
한국말로 한 것을 전해드릴 게요






*연설문*


저는 폴란드의 아들입니다.
저는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입니다.
폴란드의 천년 세월의 시련에서 외칩니다.


성령강림절 전야에 외칩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외칩니다.

성령이여 오소서. 성령이여 오소서. 이 땅을 바로 이 땅을 새롭게 하소서






그래서 정말 이 기도로 폴란드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카톨릭 교회와 개신교 교회는, 그리고 폴란드 일반시민들은
다같이 모이는 연합 구조를 형성했습니다.



위험한 위기 상황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사람들을 탄압했습니다.
모든것에 대해 거짓말만 했어요

모든 것에 대해서 다 거짓말만 했어요



폴란드에 교회에 있었잖아요
그렇지만 공산당도 그 교회는 무너뜨릴 수가 없었어요
외국인의 에이전트나 ,외국 정부가 폴란드에게 도움을 주는데
어떻게 도움을 줬냐면
카톨릭, 개신교 교회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공산주의 정권을 피해서 도움을 준거에요
그 분들이 밖에서 진정한 정보를 주었습니다.



사실 폴란드 나라에서는 그러한 정보를 준 것이 생명이나 마찬가지에요
폴란드라는 나라를 아주 강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폴란드에서 공산주의가 마침내 무너졌고요
그것은 외국에서 오는 압력 때문에 된 것이 아닙니다
폴란드라는 나라가 외부와 내부의 카톨릭, 개신교 교회 그리고 일반시민들에 의해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그 역할을 그 안에서부터 폴란드 사람들에 의해서
역할을 할 수 있게 가해진 것입니다.



공산주의 자들은 더 이상 핸들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그 권력을 내던질 수 있게 역할을 하셨습니다.


제가 방한을 한 것은 여러분들에게 희망을 드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하나님은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ㅣ
교회의 역사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제가 몇 달 전에 폴리 목사님, 박사님과 함께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그 때 당시에 폴란드 상원의원과 회의를 가졌습니다.
폴리 목사님과 현숙박사님이 북한의 상황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북한의 상황을 들으신 다음에 폴란드 상원의원이 폴란드 정부와 교회가 북한에 있는
지하교회를 돕기로 작정했습니다

폴란드는 북한 정권을 돕지 않고 , 북한 주민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 것인지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 이 땅을 새롭게 하소서 !













…………………………………………………………………



The Rev. Maciej Wilkosz Biography
마첵 윌코스 목사 소개

마첵 윌코스 목사는 초교파 기독교 단체인 폴란드 순교자의 소리 설립자이자 대표이다. 순교자의 소리 선교 사역에 있어 한 가족인 폴란드 순교자의 소리는 세계 각지에서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이유로 핍박받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섬긴다. 그는 또한 폴란드 스코초프에 있는 하나님의 성회 교회 창립자이자 담임 목회자이다. 기독교 박해 분야의 전문가로서 많은 강연 요청을 받는 윌코스 목사는 현재 폴란드 국영 방송에 정기 출연하고 있으며, 폴란드 정치인들과도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그는 1993년과 1994년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선교사로 사역했고, 동유럽과 구소련에서는 교회 개척에 참여했다. 그리고 유럽, 남북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으로 말씀으로 교회 지도자들을 격려해왔다. 윌코스 목사는 현재 기독교 출판사를 운영하며 다수의 기독교 관련 서적을 번역하였다.


윌코스 목사는 미국 조지아 주(州) 애틀란타의 루터라이스 대학 및 신학대학원에서 리더십 분야 석사 학위를 받았고, 폴란드 크라코우의 야기에우워 대학교(Jagiellonian University)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윌코스 목사는 폴란드 하나님의 성회 교회에서 안수를 받았다.

그의 아내 이레나는 신실하게 남편 곁에서 함께 사역하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18세, 10세 두 자녀가 있다.
……………………………………………………….
{순교자의소리. 02-2065-0703}
위치: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4나길 46 101호 한국 순교자의 소리
지난 3월 17일 토요일, 한국 순교자의 소리 소속 유유 선교학교(Underground University, 탈북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 훈련 학교)에서 위 주제로 윌코스 목사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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